[국내 최초 시판 화장품은?] 국내 최초로 방문 판매를 시작한 시판 화장품 회사는 줄리아(줄리아 화장품)이다. 시기는 1962년부터라고 한다. [국내 최초 시판 화장품은?] 국내 최초로 방문 판매를 시작한 시판 화장품 회사는 줄리아(줄리아 화장품)이다. 시기는 1962년부터라고 한다.
세계로 향하는 줄리아 (출처 : 구글) 세계로 향하는 줄리아 (출처 : 구글)
[한국 화장품 유통채널의 역사?] 최초의 방판 화장품 회사가 줄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방문판매라는 유통채널은 국내에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궁금해졌다. [한국 화장품 유통채널의 역사?] 최초의 방판 화장품 회사가 줄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방문판매라는 유통채널은 국내에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궁금해졌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던 줄리아 방문판매원. 놀랍도록 신기한 그 시절 골목, 길가의 상태…(출처: 유튜브 Time traveler 시간여행자)1) 포물장수=분분구 조선시대에는 보부상에 의해 화장품이 유통되었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합친 말이며, 보상은 보부상으로서 보통 고가의 부피가 적은 제품을 보부상으로서 짊어지고, 부상인은 업상으로서 저가의 부피가 큰 제품을 등에 메고 다녔다. 보따리상 중 여성 보상이었던 ‘포물장수’는 직접 집을 방문함으로써 화장품을 포함한 다양한 물건을 판매했다. 그리고 포물장수 중에는 노파가 많아 ‘아파(牙ッパ)’라고도 불렀다. 이들 보부상들은 대부분 서울 육의전에서 장을 보고 전국 지방의 5일장을 순회하며 거래하였다. (*육의전이란 지금의 종로인 한양 운종가에 있던 6종류의 생필품을 판매하던 상점.)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던 줄리아 방문판매원. 놀랍도록 신기한 그 시절 골목, 길가의 상태…(출처: 유튜브 Time traveler 시간여행자)1) 포물장수=분분구 조선시대에는 보부상에 의해 화장품이 유통되었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합친 말이며, 보상은 보부상으로서 보통 고가의 부피가 적은 제품을 보부상으로서 짊어지고, 부상인은 업상으로서 저가의 부피가 큰 제품을 등에 메고 다녔다. 보따리상 중 여성 보상이었던 ‘포물장수’는 직접 집을 방문함으로써 화장품을 포함한 다양한 물건을 판매했다. 그리고 포물장수 중에는 노파가 많아 ‘아파(牙ッパ)’라고도 불렀다. 이들 보부상들은 대부분 서울 육의전에서 장을 보고 전국 지방의 5일장을 순회하며 거래하였다. (*육의전이란 지금의 종로인 한양 운종가에 있던 6종류의 생필품을 판매하던 상점.)
신윤복의 ‘단오풍정’ 내에 포물장수가 있다. (출처:구글)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화장품 포물장수는 17세기 숙종(재위 1674-1720) 때의 ‘매분구’로 홍, 가루, 머리기름 등의 화장품을 비롯하여 거울이나 빗과 같은 장식물, 바느질 도구, 조개까지 여성에게 필요한 다양한 물건을 판매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 매분구라는 화장품 포물장수가 조선시대 판의 빵빵 화장품 판매사원이었다. 신윤복의 ‘단오풍정’ 내에 포물장수가 있다. (출처:구글)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화장품 포물장수는 17세기 숙종(재위 1674-1720) 때의 ‘매분구’로 홍, 가루, 머리기름 등의 화장품을 비롯하여 거울이나 빗과 같은 장식물, 바느질 도구, 조개까지 여성에게 필요한 다양한 물건을 판매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 매분구라는 화장품 포물장수가 조선시대 판의 빵빵 화장품 판매사원이었다.
좌:웹툰 ‘분당구’, 우:소설 ‘분당구 홍란’ 2)가 갖춰지지 않은 물류시스템 조선 이후 1901년 만전회춘당과 국영당약국은 황성신문에 얼굴의 잡티를 제거하는 연록향이라는 수입 화장품 광고를 총 14회 게재했다. 19세기 말을 전후하여 약방의 형태로 매장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625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 화장품 시장은 암흑기를 맞았다. 좌:웹툰 ‘분당구’, 우:소설 ‘분당구 홍란’ 2)가 갖춰지지 않은 물류시스템 조선 이후 1901년 만전회춘당과 국영당약국은 황성신문에 얼굴의 잡티를 제거하는 연록향이라는 수입 화장품 광고를 총 14회 게재했다. 19세기 말을 전후하여 약방의 형태로 매장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625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 화장품 시장은 암흑기를 맞았다.
왼쪽: 1930년대 화장품 가방(코리아나 화장품 박물관), 오른쪽: 근대 여성들의 화장품(출처: 구글)3) 1962년 방문판매 태동 이후 새로운 화장품 유통방식을 꾀한 ‘방판화장품’ 업체들이 나타난다. 1962년 줄리아화장품을 필두로 태평양화장품 등 기업은 아줌마 판매사원을 기용했다. 즉, 분당구의 근대화 버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태평양의 방문판매제도 도입시기는 1964년 9월이며, 전국단위로 이 제도를 정착시켰다고 한다.) 왼쪽: 1930년대 화장품 가방(코리아나 화장품 박물관), 오른쪽: 근대 여성들의 화장품(출처: 구글)3) 1962년 방문판매 태동 이후 새로운 화장품 유통방식을 꾀한 ‘방판화장품’ 업체들이 나타난다. 1962년 줄리아화장품을 필두로 태평양화장품 등 기업은 아줌마 판매사원을 기용했다. 즉, 분당구의 근대화 버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태평양의 방문판매제도 도입시기는 1964년 9월이며, 전국단위로 이 제도를 정착시켰다고 한다.)
왼쪽: 초기 아모레 방문판매원, 오른쪽 상단: 60년대 아모레 미용사원(판매팀 교육), 오른쪽 하단: 60년대 화장법 교육(출처: 조선비즈) 왼쪽: 초기 아모레 방문판매원, 오른쪽 상단: 60년대 아모레 미용사원(판매팀 교육), 오른쪽 하단: 60년대 화장법 교육(출처: 조선비즈)
방문 판매원들은 아줌마 특유의 친화력과 입담으로 빠르게 단골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1970년대에 성공적으로 화장품 판매 유통 채널을 정착시켰다. 1980년대 초 방문판매는 전체 화장품 유통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출처: 조선일보 / 화장품 판매의 진화, 숙종 때 분당구에서 방문판매·온라인까지…) 방문 판매원들은 아줌마 특유의 친화력과 입담으로 빠르게 단골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1970년대에 성공적으로 화장품 판매 유통 채널을 정착시켰다. 1980년대 초 방문판매는 전체 화장품 유통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출처: 조선일보 / 화장품 판매의 진화, 숙종 때 분당구에서 방문판매·온라인까지…)
드라마 응답하라 1988」드라마「응답하라 1988」
4) 80-90년대 : 시판이 본격화, 백화점의 성장 이 시기는 시판(전문점 판매)이 본격화되기 시작해, 대형 할인점등의 유입이 증가했다. 또 백화점 채널도 크게 성장했다. 이는 외사제품 수입이 개방된 것과도 겹친다. 4) 80-90년대 : 시판이 본격화, 백화점의 성장 이 시기는 시판(전문점 판매)이 본격화되기 시작해, 대형 할인점등의 유입이 증가했다. 또 백화점 채널도 크게 성장했다. 이는 외사제품 수입이 개방된 것과도 겹친다.
70년대 초 백화점(출처:https://imway.tistory.com/75) 박정희 정권 시절 국내 기업의 보호 목적 아래 1961년 7월 특정 외래품 판매 금지법이 제정된 이래 1983년에는 부분적인 화장품 수입 및 1986년에는 화장품 전 품목에 대한 수입 제한이 해제되었고, 이로 인해 선진국의 해외 브랜드 제품이 급속히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우수한 품질의 내용물 및 화려한 제품 디자인을 겸비한 해외 백화점 브랜드 제품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70년대 초 백화점(출처:https://imway.tistory.com/75) 박정희 정권 시절 국내 기업의 보호 목적 아래 1961년 7월 특정 외래품 판매 금지법이 제정된 이래 1983년에는 부분적인 화장품 수입 및 1986년에는 화장품 전 품목에 대한 수입 제한이 해제되었고, 이로 인해 선진국의 해외 브랜드 제품이 급속히 유입되었다. 이에 따라 우수한 품질의 내용물 및 화려한 제품 디자인을 겸비한 해외 백화점 브랜드 제품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밀수·가짜화장품범람(출처:서울신문) 밀수·가짜화장품범람(출처:서울신문)
5) 2000년대 초반: 브랜드샵 전성기에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찾을 수 있는 정보력이 인터넷의 보급으로 점점 증가함에 따라 원 브랜드샵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대표적인 예는 에이블 CNC 미샤이다. 2002년 이화여대 앞에 첫 직영점을 열어 이른바 3300원짜리 화장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외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네이처리퍼블릭, 더샘, 토니모리 등이 있다.) 5) 2000년대 초반: 브랜드샵 전성기에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찾을 수 있는 정보력이 인터넷의 보급으로 점점 증가함에 따라 원 브랜드샵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대표적인 예는 에이블 CNC 미샤이다. 2002년 이화여대 앞에 첫 직영점을 열어 이른바 3300원짜리 화장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외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네이처리퍼블릭, 더샘, 토니모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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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 전성기 시절인 1970년대 메이크업의 특징은? ]우선 참고할 만한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줄리아’ 광고를 기반으로 1970년대 메이크업의 특징을 살펴봤다. 물론 여기저기 구글한 부분도 참고해서 기록하려고 해. 재미있는 점은 이때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윤희가 줄리아의 최장기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70년대 줄리아 광고를 보면 정윤희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때 1970년대 메이크업은 물론 화장품 광고 시장을 석권한 여배우 트로이카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공통되는 부분은 아래의 세 가지로 기록하고자 한다. [방탄 전성기 시절인 1970년대 메이크업의 특징은? ]우선 참고할 만한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줄리아’ 광고를 기반으로 1970년대 메이크업의 특징을 살펴봤다. 물론 여기저기 구글한 부분도 참고해서 기록하려고 해. 재미있는 점은 이때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윤희가 줄리아의 최장기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70년대 줄리아 광고를 보면 정윤희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때 1970년대 메이크업은 물론 화장품 광고 시장을 석권한 여배우 트로이카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공통되는 부분은 아래의 세 가지로 기록하고자 한다.
1) 뚜렷한 색감 표현의 아이섀도우(핑크/퍼플/블루/그린), 현재로서는 도전할 수 없는 뚜렷한 원색을 아이섀도우의 색감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컬러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다. 핑크 퍼플을 비롯해 블루와 그린 계열까지 다양하다. 정윤희가 기용된 광고 말고도 다른 1970년대 메이크업 광고를 봐도 이 부분은 좀 확실한 공통점 중에 하나인 것 같다 1) 뚜렷한 색감 표현의 아이섀도우(핑크/퍼플/블루/그린), 현재로서는 도전할 수 없는 뚜렷한 원색을 아이섀도우의 색감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컬러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다. 핑크 퍼플을 비롯해 블루와 그린 계열까지 다양하다. 정윤희가 기용된 광고 말고도 다른 1970년대 메이크업 광고를 봐도 이 부분은 좀 확실한 공통점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왼쪽: 1982’10, 오른쪽: 1982’09 화천 볼 알로엑스 왼쪽: 1982’10, 오른쪽: 1982’09 화천 볼 알로엑스
왼쪽:1978’07/08 꽃샘추위 잡지 표지 모델, 오른쪽:1976’12 아모레 향장 표지 모델2) 길쭉한 눈썹 먼저 정윤희의 눈썹 모양은 일자/각진 모양/둥근 모양 다양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길쭉한 모양의 눈썹이 보인다. 왼쪽:1978’07/08 꽃샘추위 잡지 표지 모델, 오른쪽:1976’12 아모레 향장 표지 모델2) 길쭉한 눈썹 먼저 정윤희의 눈썹 모양은 일자/각진 모양/둥근 모양 다양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길쭉한 모양의 눈썹이 보인다.
왼쪽:70년대 말 꽃샘 잡지 추정, 중:70년대 말 줄리아 광고, 오른쪽:1977’12 줄리아 꽃샘 주니어 광고(출처:구글) 3) 계절별 메이크업 구분 1970년대 메이크업은 네 가지 계절별로 메이크업을 구분해주는 것이 정착화되는 시기라고 한다. 줄리아 정윤희 광고에 따르면 ‘여름’ 시즌에 대한 구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자외선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베이스 메이크업에서는 가벼운 제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교육시키던 시기였던 것 같다. (여름: 자외선 차단, 가벼운 텍스쳐의 베이스 메이크업, 가을: 그윽한 아이 메이크업, 겨울: 기초 피부 관리) 왼쪽:70년대 말 꽃샘 잡지 추정, 중:70년대 말 줄리아 광고, 오른쪽:1977’12 줄리아 꽃샘 주니어 광고(출처:구글) 3) 계절별 메이크업 구분 1970년대 메이크업은 네 가지 계절별로 메이크업을 구분해주는 것이 정착화되는 시기라고 한다. 줄리아 정윤희 광고에 따르면 ‘여름’ 시즌에 대한 구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자외선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베이스 메이크업에서는 가벼운 제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교육시키던 시기였던 것 같다. (여름: 자외선 차단, 가벼운 텍스쳐의 베이스 메이크업, 가을: 그윽한 아이 메이크업, 겨울: 기초 피부 관리)
왼쪽 : 1978 ’08 줄리아 화천 미그린”썸머메이컵”, 오른쪽:1979’05 줄리아 화천 미그린 “워터 파운데이션” (출처: 구글) 왼쪽 : 1978 ’08 줄리아 화천 미그린”썸머메이컵”, 오른쪽:1979’05 줄리아 화천 미그린 “워터 파운데이션” (출처: 구글)
배우 정윤희와 줄리아 화장품을 얼핏 본 것 같은데, 새롭게 알게 되는 메이크업 역사가 너무 많다. 여기저기 구글하면 할수록 궁금한 정보가 너무 많다. #정윤희 #줄리아 #방빵화장품 #배우정윤희 #분분구 #트로이카 #방물장수 #1970년대메이크업 배우 정윤희와 줄리아 화장품을 얼핏 본 것 같은데, 새롭게 알게 되는 메이크업 역사가 너무 많다. 여기저기 구글하면 할수록 궁금한 정보가 너무 많다. #정윤희 #줄리아 #방빵화장품 #배우정윤희 #분분구 #트로이카 #방물장수 #1970년대메이크업